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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제일교회 복원기념 예배당 봉헌하다 (복원건축위원 임선재 장로, 성애성구사 대표)

성애성구사 2021-01-11 10:46:38 조회수 934

철원제일교회 복원기념예배당 봉헌식 (2013년 10월 29일)

 

민족의 격랑과 아픔을 고스란히 안은 채 버려지듯 민간인출입금지구역에서 방치되었던 춸원제일교회의 복원기념예배당이 건축을 마치고 29일에 봉헌예배를 드렸다. 2006년 10월 총회에서 건축이 결의된지 7년만이고 2011년 11월에 착공예배를 드린 이후로는 2년만에 완공된 것이다. 

1905년 세워진 철원제일교회는 일제 강점기에 강원지역에서 처음으로 만세운동에 동참하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등 독립운동과 신앙의 모범을 보였었다. 또 해방직후 38선 이북에 위치하여 공산권하에 있었으나 신한애국청년단을 조직하여 반공 유격전을 펼칠 정도로 일제의 핍박과 공산당의 박해속에서도 순교하면서 신앙과 교회를 지켜왔던 교회였다. 그러나 6.25전쟁 와중에 인민군 병동으로 사용되다가 유엔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어 방치되어 왔다. 그러니까 철원제일교회가 무너진지 63년만에 다시 세워진 것이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의 옛터에 200석 규모로 30억원이 소요되어 세워진 철원제일교회복원기념예배당의 봉헌감사예배는 400여명이 참석하여 발디딜 틈이 없었다. 바닥에 앉거나 밖에서 예배를 드리고 일찍돌아간 이들도 많아 이 예배당의 봉헌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관심을 받고 감동으로 받아들여지는 지를 느끼게 했다.

이날의 예배는 철원서지방 정호면 감리사의 사회로 시작되어 남선교회 전국연합회장 한재룡 장로의 기도와 여장로 전국연합회장 이효정 장로의 기도, 철원서지방 교역자부부의 찬양 후 권오서 목사의 말씀이 선포되었다.

역대하 7장 11-18절의 말씀으로 설교한 권오서 목사는 “철원제일교회는 건물의 복원뿐만 아니라 믿음과 신앙을 다시 세우는 길”이라 선포하며 “복원되는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재건되는 교회요, 순교 신앙의 전통이 계승되는 교회요, 사명이 복원되는 교회요, 선한 영향력을 갖는 교회가 되어 세상속에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고 남북을 잇는 평화의 상징이 되어야” 할 것을 강조했다.

  
▲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23호)으로 지정된 철원제일감리교회 건물잔해. 기념예배당의 좌측 언덕에 위치해 있다.


이어 동부연회 이철 감독의 집례로 봉헌예식이 시작되었고 복원건축위원장으로 특별한 수고를 아끼지 않은 이규학 목사의 경과보고와 인사의 말이 있었다. 이규학 목사는 먼저 계약했던 건축사의 부도의 어려움중에도 우현건설을 통해 건축이 완성된 것에 감사를 표하면서 “총회의 결의가 지켜지기를 소망했고 철원서지방 목회자들의 기도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 이라며 자신이 건축에 참여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그후에는 이 교회에서 목회하게 될 월하교회 이상욱 목사와 안병모 사모가 회중에게 소개되었고 특히 철원제일교회에서 목회하시던 중 순교하신 강종근 목사의 딸 강서라 여사가 소개되어 의미를 더했다. 아울러 강목사의 삶을 발굴하여 독립유공자로 추서되도록한 이창건 박사도 소개됐다.

이철감독의 봉헌선언 이후 이 교회가 건축되기까지 수고하며 협력했던이들에게 감사패를 전했고 이어 임준택 감독회장직무대행의 축사와 강환호목사의 축사, 김남철 목사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복원을 꿈꾸다

이 교회의 주소는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100-2, 102번지이다. 감리교회 기본재산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땅은 잃어버릴뻔한 땅이다.

철원은 전쟁이 치열했던 관계로 행정서류들이 대부분 소실되었다. 사람들의 호적도 사라져서 새로만드는 과정에서 군대에 가지 않기위해 나이를 늘이거나 줄이는 일이 많았다. 재산상의 서류도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3명 이상의 보증인만 있으면 등기를 새로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특히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땅들이 표적이 되었고 철원제일교회 땅도 그런 이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1980년대들이 이런 문제를 깨닫고 감리교회 유실재산을 찾는일에 나선이가 있었다. 감신대 교수이신 이덕주 교수와 장흥교회 이금성 장로이다. 이들은 철원제일교회 터가 개인의 명의로 옮겨진 것을 발견하고 이것을 찾아 감리교회 재산으로 환원해 놓았다.

이후 이 교회 터를 놓고 기도하며 꿈꾸는 이들이 생겨났다. 철원서지방회는 2005년 50회 지방회에서 철원제일교회 복원을 위해 연회에 건의안을 청원하고 지방에서는 역사보존위원회를 조직하여 이 일을 현장 지휘하기로 했다. 그후 8년여를 매년마다 이를위해 기도회를 열고 모금운동을 벌여 건축의 마중물이 되었다. 특히 철원제일교회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월하교회와 이상욱 담임목사는 이 일을위해 기도하며 헌신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이 열매가되어 2006년 4월 동부연회에서 건의안이 통과되고 2006년 10월 총회에서도 결의되고 복원건축위원히를 조직하여 이규학 감독을 위원장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무너진 교회와 그 터만 남있던 철원제일교회를 바라보며 그 교회의 신앙과 헌신의 역사를 그저 과거의 사건으로만 보지 않고 현재가운데 계승하려했던 몇몇 사람들의 꿈과 기도가 오늘 우리에게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 철원제일교회 조감도

 


미래를 향해

이재 철원제일교회의 건물은 세워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로서의 건물뿐만나 아니라 그 교회가 만들어왔던 것들을 현재가운데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철원제일교회 복원건축위원회가 만들어낸 ‘다시 시작되는 철원제일교회’는 이를 넷으로 정리하고 있다. 

1. 전통과 역사를 계승해야 한다. == 철원제일교회는 감리교회와 장로교회의 협력했던 아름다운전통, 독립운동을 통한 애국애족의 전통,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순교한 거룩한 신앙의 전통, 봉사와 계몽을 통한 지역선교의 전통을 잘 계승함이 복원의 목적이다.

2. 평화와 화해의 장 == 평화통일과 남북의 화해, 한국과 일본의 화해의 장의 역할을 하며 이를 위한 교육의 장이되고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의 장이 됨이 목적이다.

3. 신앙훈련의 장 == 철원에서 철원제일교회, 서기훈 목사가 순교한 장흥교회, 최초의 기도원인 대한수도원을 중심으로 성지순례가 행해지고 있다. 이를통해 순교적 신앙과 깊은 영성을 체험하게 한다. (이를 위해 월하교회 건물은 교육관과 수련시설로 사용될 예정이다)

4. 선교의 사역 == 과거 철원제일교회가는 영서북부 지역 선교의 중심지였던 것처럼 통일 시대의 한국선교와 북녘선교의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를 계획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열매맺는 그리스도인이 될수 있다. 철원제일교회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다. 건물의 복원은 철원제일교회가 현재화된 것이요. 이 교회가 목적하는 일들은 미래를 꿈꾸며 나가는 것이다.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우리의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믿음의 선배가 된다면 감리교회의 미래도 기독교의 미래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 복원되는 실제모양의 철원제일교회 조감도

 



철원제일교회의 약사

1. 1905년 철원읍에 교회가 세워졌다. 철원제일교회다. 이 교회는 철원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던 북장로회 웰번 선교사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의 사역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907년 감리교회와 장로교회는 선교의 효율성을 위해서 지역을 나누게 되었고 강원 북부지역은 남감리회 지역이 되었다. 철원제일교회는 감리교회가 되었고 철원읍과 철원군의 기독교 신앙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이 교회는 1919년에는 강원도에서 최초로 삼일 만세운동에 동참하게 되었다. 박연서 목사와 청년들의 결단은 ‘철원애국단’이라는 항일단체를 만들기도 했고 그로인해 23명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어려움 중에도 1920년에는 교회 건축도 하게되었다. 1930년대에는 더욱 부흥하는 교회가 되어 장년과 어린이를 포함 600여명 이상 모이는 교회가 되었고 교회는 비좁아 졌다. 교회 건축이 결정되고 당시 최고의 건축가였던 월리엄 보리스의 설계로 건평 198평의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다. 그 시대에 감리교회를 대표할만한 공동체와 건물의 교회가 되었다.

2. 1939년에는 강종근 목사가 부임했다. 그는 35살의 나이에 철원제일교회에 부임하게 되었다. 그의 목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목회였다. 신앙의 열정과 애국심을 강조하는 말씀들이 선포되고 일경은 그의 목회를 방해하던중 신사참배 반대를 이유로 구속하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으로 쇠약해져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겼으나 그곳에서 순교하셨다. 1942년 6월 3일의 일이다. 그의 순교는 신사참배 반대자로는 최초의 순교였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내 마음이 기쁘다”라고 윤희성 사모에게 말했다 한다. 2003년에 건국훈장애국장을 추서받고 2006년에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이 일을 유족들도 하지 못했고, 감리교회도 하지 못했다. 강종근 목사의 아들 강서웅의 친구인 이창건 박사의 공로가 절대적이다)

3. 철원지역은 8.15 해방을 맞이했지만 38선 이북지역이 되어 공산주의 세상이 되었고 이 일은 신앙의 자유가 점점 사라지고 기독교인들은 공산주의 자들에게 가장 불편한 눈의 가시같은 존재가 되었다. 기독교인들은 신앙적인 이유로 반공주의자가 되었고 철원제일교회도 예외가 아니였다. 이 교회의 김윤옥 부목사는 장흥교회의 성도들과 신한애국청년단을 조직하고 반공 유격전까지 준비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국군과 유엔군의 진격으로 세상이 잠시 바뀌기도 했지만 중공군의 참전은 전쟁의 상황을 바꿔버렸고 충렁이는 전선에서 철원제일교회는 인민군 병동으로 사용되다가 유엔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어 오늘 무너진 교회가 되었고 전쟁 이후에도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이 되어 교회가 회복되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렀다.


<철원제일교회복원기념예배당 봉헌예배 이모저모>

* 아래 사진은 안삼영 목사가 촬영했습니다.

 

  
▲ 1부 봉헌감사예배. 사회 철원서지방 정호면 감리사
  
 
  
▲ 기도 - 남선교회전국연합회 한재룡 장로
  
▲ 성경봉독 - 여장로회전국연합회 이효정 장로
  
▲ 특별찬양 - 철원서지방 교역자 부부
  
▲ 설교 - 권오서 목사(춘천중앙교회)
  
 
  
▲ 헌금찬양 - 인천제일교회 찬양팀
  
▲ 봉헌기도 - 복원건축위원 임선재 장로
  
▲ 2부 봉헌예식 집례 - 이철 감독(동부연회)
  
▲ 인사말씀과 건축보고 - 이규학 목사(건축위원장)
  
▲ 철원제일교회에서 순교한 강종근 목사의 딸 강서라 여사와 강목사의 삶을 발굴하여 독립유공자로 추서되도록한 이창건 박사(우측서 두번째)가 박경진 장로(맨 좌)로부터 소개됐다.
  
 
  
▲ 이 교회에서 목회하게 될 월하교회 이상욱 목사와 안병모 사모가 소개되고 있다
  
▲ 공사보고 - 복원건축위원 김광용 장로
  
▲ 복원건축위원 박경진 장로가 이철 감독에게 봉헌을 위임하고 있다.
  
▲ 봉헌교독
  
▲ 공로패 감사패 전달
  
▲ 축사 - 임준택 감독회장직무대행
  
▲ 축사 - 강환호 목사
  
▲ 광고 - 복원건축위원 김진산 목사
  
▲ 축도 - 김남철 목사
  
 
  
 
  
 

 

출처 : 당당뉴스 한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