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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애성구사 임선재 대표 - IBK MAGAZINE 12월호 (2017년)

성애성구사 2021-01-11 10:49:37 조회수 1,337
고객의 마음에 신뢰의 씨앗을 심다                   성애성구사 임선재 대표
성애성구사 임선재 대표
임선재 대표는 “사업은 농사와도 같다”고 말한다. 고객의 마음에 신뢰라는 씨앗을 심고 오랜 시간 부단한 노력을 통해 그 씨앗이 자라나도록 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성애성구사는 중소 가구사로는 드물게 통상산업부 장관상을 수상하고, 클린 사업장으로도 여러 차례 선정되었으며, 경기도 유망중소기업으로도 뽑혀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뿐 아니라 회의장에 들어서면 교회에서 받은 500개가 넘는 공로패와 감사패가 장식장을 빽빽이 채우고 있다. 그가 수확한 신뢰의 열매들이다. IBK기업은행 반포지점은 임선재 대표가 이렇게 씨앗을 심고, 열매를 맺을 동안 마중물 역할을 하며 그를 응원했다.

성애성구사 임선재 대표
성애성구사 임선재 대표
성스러운 마음을 담아 제작한 가구로 세계를 제패하다성애성구사는 50년 동안 경건한 예배와 아름다운 교회를 위한 성가구를 제작하기 시작해 업계 최고의 성가구사로 성장했다. 1년에 전국 100~200곳의 교회에 장의자, 강대상 등 성가구를 납품하는데, 한 달에 생산하는 성가구만 해도 장의자 1,500대, 개별 의자 6,000대, 강대상 700대가 넘는다. 최근에는 세미나용 의자와 강당용 의자 등 일반 가구를 생산하고, 대형 가구회사에 납품을 하는 등 생산의 다변화를 이뤄냈다. 또 일본과 중국 등 세계 곳곳으로 진출하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이렇게 활발하게 사업을 확장해나가는 배경에는 국내에서 중소 가구업체로 살아남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부터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저희 회사 사정도 안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0년에 설립한 일본 나고야 현지 법인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틈새시장을 노렸습니다. 일본은 교회가 작고, 그 수가 많지 않아 전문적으로 성가구를 만드는 곳이 없습니다. 또 일본 내에 있는 미군 부대에 납품을 하며 판매 실적을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최근 일본에서 1,200만 엔 규모의 입찰에 낙찰되었다는 낭보가 들려왔다. 그뿐 아니라 중국 시장에서 지난해 18만 달러의 수익을 거둔 데 이어, 올해는 벌써 13만 3,000달러의 주문을 받아놓은 상태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지금의 규모와 성장세로는 상상이 안 되지만, 임선재 대표가 처음 가구 사업에 뛰어들 당시만 해도 그는 가난하고 병약한 청년이었다.
“어려웠던 사생활을 얘기하자면 부끄럽지만, 당시 잘 곳이 없어서 공사장 합판 위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고, 공장도 없이 저에게 일을 맡겨준 교회 앞마당에서 가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일해서 모은 돈으로 얻은 첫 월세방에는 화장실도 없었죠.”
하지만 그는 자신을 믿고 일을 맡겨준 교회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누구보다도 열심히 성가구를 만들었다. 그의 솜씨와 성실함을 눈여겨본 이들이 주위 교회에 그를 소개해주었고, 소문을 들은 여러 곳의 교회가 앞 다투어 그에게 가구를 주문하면서 성애성구사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가구 회사는 다른 회사에 비해 넓은 공간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기계 하나를 둔 3평 남짓한 공장이었다가 10평짜리 공장으로, 그러다 340평 공장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5,000평 규모의 공장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5,000평의 공장을 마련하는 데에는 수중에 갖고 있는 자금이 넉넉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현재 공장이 위치하고 있는 공터를 발견했다. 당시 임야로 나온 땅이었지만 공장 부지로의 허가 가능성을 보고 구입을 서둘렀다. 당시 담보로 인정되지 않는 임야를 인정담보로 해 IBK기업은행에서 힘을 보태주면서 지금의 공장을 세울 수 있었다.

성애성구사 임선재 대표
사회에서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 위한 사업임선재 대표는 성가구를 만들어온 50년 동안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가 아주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심장병으로 만기 전역을 하지 못했는데, 심장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당시 돈으로 40만 원의 수술비가 필요했다. 그 40만 원은 그가 가진 전 재산과 맞먹는 돈이었다. 그가 많은 치료비에 힘겨워하고 있을 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어떤 이가 그의 수술비를 지원했고, 그는 수술 후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그는 세브란스병원에 가서 400만 원을 기부했다. 1978년의 일이다.

“나도 언젠가는 나를 도와준 그 누군가처럼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고 생각해왔는데, 그제야 그 꿈을 이뤘습니다.”
그 후 임 대표는 매년 돈 때문에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해 세브란스병원에 치료비를 기부해오고 있다. 그의 선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학업에 대한 미련이 많았던 그는 한창 공부해야 할 학생들이 부족함 없이 배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장학금을 주기 시작했다. 처음 1억 원 정도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난 다음부터 장학금을 더 오래, 더 많이 주기 위해 장학재단을 설립해야겠다는 꿈을 품었다. 그러나 장학재단을 설립하기에 작은 가구 회사를 운영하는 것만으로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에게 장학재단 이야기를 들은 한 지인은 자신이 벌이고 있는 빌라 사업을 제안했다. 빌라 건축 비용을 마련하고자 동분서주할 때 IBK기업은행 반포지점이 다시 한번 마중물을 만들어주었다.

“반포지점에 가서 상황을 설명했더니 흔쾌히 빌려주시더라고요. “사장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저희는 무조건 믿습니다. 더군다나 좋은 취지로 시작하시는 일이잖아요’라면서요.” 그때 또다시 IBK기업은행 반포지점과의 신뢰를 확인했죠.”

성애성구사 임선재 대표
성애성구사 임선재 대표
빌라 사업으로 얻은 수익금 전액은 그대로 장학재단의 기본 재산이 되었다. 그는 장학재단에 자신이 1980년에 분양받은 반포동의 서울경남쇼핑센터도 기부했다. 이렇게 장학재단은 정식으로 사회공익재단으로 교육부의 승인을 받았고, 현재 사무실로 쓰고 있는 건물인 서울경남쇼핑센터에서 나오는 월세로 장학금을 마련해 현재까지 2억 3,000만 원을 지급했다.

“사업 목적은 ‘사회에서 받은 사랑을 되갚는 것’입니다. 이 사업을 아주 오래전부터 구상해왔고, 이제야 완성해 나가고 있어요. 앞으로도 해야할 일이 많이 남아 있고요.” 그의 이러한 통 큰 기부는 신문을 통해 널리 알려져 많은 기업가와 종교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성애성구사 임선재 대표성애성구사 임선재 대표, IBK기업은행 반포지점 이영이 지점장
성애성구사 임선재 대표
첫 인연이자 유일한 동반자인 IBK기업은행IBK기업은행 반포지점과 임선재 대표는 여러모로 인연이 각별하다. 임선재 대표에게 처음 거래하기 시작한 은행이자 지금까지 유일하게 거래하는 은행이고, 반포지점에 임선재 대표는 제1호 고객이다. 서로에게 첫 인연인 셈이다.

“저는 무엇이든 첫 인연을 중시해요. 어렵게 시작했지만 처음 시작한 일인 가구 만드는 일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고, 공장이 아닌 산을 담보로 저를 믿어준 IBK기업은행과도 지금까지 소중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어요. 이렇게 신뢰가 쌓이다 보니 그새 50년이 지났네요.” 50년 동안 함께하면서 많은 위기도 있었다. 임선재 대표에게 다른 은행들의 유혹이 이어졌고, IBK기업은행에서도 내부 금리가 오른 적이 있었다.

“한번은 IBK기업은행에서 ‘내부 금리가 많이 올랐으니 다른 은행과도 비교해보시고 결정하세요’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때 얼마나 섭섭했는지 몰라요.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얼만데…’ 싶기도 하고요.” 이 말을 들은 반포지점 이영이 지점장은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저희는 대표님께 솔직하게 얘기하고 싶었어요. 우리 지점의 1호 고객님이시기도 하고, 늘 저희 은행에 각별한 애정을 가져주시거든요. 저희에게는 명예지점장님과 다름없어요. 그래서 대표님을 생각해서 얘기했는데 많이 서운해하시더라고요. 저희야말로 서운해하시는 모습에 죄송하면서도 감사했죠.” 반포지점이 있는 건물 5층에 성애성구사 사무실이 있어, 임선재 대표는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반포지점을 직접 찾는다. 그러다 보니 미세한 차이도 정확하게 느낀다.
“이영이 지점장님 오시고 지점이 확 바뀌었어요. 원래도 굉장히 친절하던 직원들이 이제는 고객이 감동할 만큼 더 친절해졌죠.” 이영이 지점장도 “성애성구사와 오랫동안 거래해왔지만 요즘에는 더욱 신이 난다”며 화답했다.

“한동안 국내 가구업계가 굉장히 어려웠는데, 이를 극복하고자 해외 진출을 모색하시고 결국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셔서 승승장구하고 계시잖아요. 선물환이나 외환거래가 거래가 많아지는 걸 보면 저희가 다 뿌듯합니다.” 이제는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는 성애성구사가 앞으로도 시각과 촉각을 모두 만족시키는 우수 기업으로, 또 어려운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기부하는 착한 기업으로 꽃길만 걷길 기대해본다.   글 강나은, 사진 안호성